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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이런날도있었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안성은편 18 (2007.07.09 21:16)

 어렸을 때, 아니, 고등학교올라올 때까지 내 꿈은 과학자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문학자나 의사.

생일 때 제일 받고 싶었던 선물은 현미경, 천체망원경.

제일 해보고 싶었던 일은 직접 오로라를 보는 것.

제일 가고싶었던 곳은 남극세종기지.

평생을 바치고 싶었던 일은 국경없는 의사회에서의 활동.

 

 지금도 그렇지만 하늘을 보는게 좋았다.

빈 허공에, 적당한 힘의 작용에 의해 떠있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전에는 반짝이는걸 보는게 좋아서 -

아빠랑 자주 하늘을 봤다.

밝고 둥근 보름달이 떴을 때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크레이터를,

어째서 그렇게나 보고싶어했 던걸까?

까만 하늘을 수놓던 작은 별들도 좋았지만

나는 달에 새겨진 그 크고 작은 분화구를 더 좋아했다.

언젠가 아빠가 새로운 망원경을 사오셨을 때, 제일 먼저 달의 그 모습을 보고싶어서 아껴둘 정도였으니까.

 

 렌즈를 통해 눈 앞에 보이는 백황색의 은은한 빛이, 새벽에는 하얗게 바래서 빛 속으로 묻혀가는게 신기했다.

외할머니집 과수원에서 올려다본 하늘에 촘촘히 박혀서 빛을 내던

그 많은 별들, 조개를 주으러갔던 밤바다와 붉은 달, 반짝이며 부서지던 그 파도들, 밤새 추운 베란다에서 봤던 유성우 역시.

몇 백 광년 전의 빛이 여전히 빛으로 남아 여기있는 우리가 볼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고리인 것 같아서, 그 별을 보고있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중에 이 하늘의 것들과 하늘 밖의 것을 내가 가진 언어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며

의사를 꿈꾸곤 했는데 - 도대체 어떤 인력이 나를 이끌어서 그림을 보게했을까. 생각할 수록 참 아이러니 하다.

난 단지 피리부는 소년을 사랑했을 뿐이고 쥴리앙을 마음에 둔 것 밖에 없었는데.

 

 어느 여름날이었나, 나는 해바라기의 화가, 고흐가 밤의 테라스를 어떤마음으로 그렸는지,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그 사람도 결국은 별을 안았던 거야. 방식은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불로뉴항의 달빛에 비친 그 사람들이 그립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짙은 코발트 블루의 하늘에 흐리게 떠 있는 달. 그리고 배. 그리고 사람.

그런 사소하지만 스칠 수 없는 것이었겠지 ? 내 시선을 이 곳에 머무르게 한 것들.

 

 방법은 다르지만 나역시 별을 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되뇌였다. 별과 바꾼 그림인데, 내게 소중할 수 밖에 없잖아, 라며 나는 웃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