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 썸네일형 리스트형 내 여자의 열매 - 한강 1 열여섯살이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난 뒤 운동장 가의 긴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 오후였다. 날이 저물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는 운동장을 향해 눈을 뜨고 있었다. 가방을 멘 아이들이 멀리서 오가다가 차츰 인적이 드물어졌다. 문득 정신이 들어보면 한시간, 두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곤 했다. 그때, 그 햇빛 아래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2 스물네살의 추석 밤이었다. 달을 보려고 혼자 대문에 나갔다. 처음 직장에 다니며, 잠을 네다섯 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도둑글을 쓰던 때였다. 소원을 빌어야지. 희끗한 달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뭔가 바랄 만 한 것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냥, 이 마음을 잃지 않게만. 그리고는 더 빌 것이 없었다. 순간순간 차고 깨끗한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