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경숙

오래전 집을 떠날 때/신경숙 소설집/창작과 비평사 감자먹는 사람들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지금 뭘 하고 계실까요? 땅콩을 캐고 계실까, 아니면 이젠 다 시든 고춧대를 뽑고 계실까? 저 비가 그 마을에도 내린다면 아마도 뒷산의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잎새들을 우수수 떨어뜨리고 있겠지요. 밤나무 밑엔 이제는 아무도 줍지 않는 밤이 여기저기 수북이 흩어져밤이면 뒤꼍의 감나무 잎새들이 우우ㅡ거리며 앞마당으로 쓸려나와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닐 것입니다.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처럼요.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추수를 하고 계시겠지. 벼를 베고 말리고 뒤집고 탈곡하고. 그 지방의 병원에서 이 도시의 병원으로 아버지가 옮겨오실 때 따라나서려는 어머니께 아버진 크게 역정을 내셨지요. 논밭의 가을일을 내버려둘 참이냐고요. 봄 내내 씨뿌려서 여름 내내 한 가지 것에 여든여덟 번씩 손을.. 더보기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신경숙/문학동네 팔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그냥 흘러가는 법 또한 없다. 팔 년 만에 전화를 걸려온 그에게 어디야? 하고 담담하게 묻는 순간, 이제 내 마음속엔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아 있는 격렬한 감정을 숨기느라 잘 지내고 있는 시늉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정말 담당하게 그에게 어디야? 하고 묻고 있었으니까. 의문과 슬픔을 품은 채 나를 무작정 걷게 하던 그 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쓰라린 마음들은. 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아픔들은 다 어디로 스며들고 버려졌기에 나는 이렇게 견딜 만해졌을까. 이것이 인생인가.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른다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 때문인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휘말려 헤어.. 더보기
눈에 잠이 가득한 채로 버스에 올랐다, 신경숙씨 글을 읽다가 밖을 본다, 그리운 빛의 해(2009.05.08 01:59) 더보기
아름다운 그늘 -신경숙 산문집 우리는 서로 견디기 위해 서로에게 상처를 줄거야. 나도 모르는 채 그에게 입힐 상처. 왜 그렇게만 생각해? 우리는 서로 견디기 위해 서로를 위로할거야. 나도 모르는 채 그에게 받을 위로. 꿈은 오로지 사라지기만 하는건 아닐거다. 육체는 오로지 낡아가기만 하는건 아닐거다. 사라지고 낡아가면서 남겨놓았을. 생에 새겨놓았을 비밀을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뿐일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함부로 살지않는 일. 그래, 함부로 살지말자. 할 수 있는데 안하지는 말자. 이것이 내가 삶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적극성이다. 겨우 서른 셋. 기어이 잊어야만 하는 일을 벌써 갖지 말자. 왔다가 가버린 것, 저기에서 진이 빠져 마침내 숨을 죽인 것, 여기에서 다시 생기를 줘 살게하자. 시간에 빼앗기기 전까지 아무것..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