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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집을 떠날 때/신경숙 소설집/창작과 비평사


감자먹는 사람들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지금 뭘 하고 계실까요? 땅콩을 캐고 계실까, 아니면 이젠 다 시든 고춧대를 뽑고 계실까? 저 비가 그 마을에도 내린다면 아마도 뒷산의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잎새들을 우수수 떨어뜨리고 있겠지요. 밤나무 밑엔 이제는 아무도 줍지 않는 밤이 여기저기 수북이 흩어져밤이면 뒤꼍의 감나무 잎새들이 우우ㅡ거리며 앞마당으로 쓸려나와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닐 것입니다.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처럼요.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추수를 하고 계시겠지. 벼를 베고 말리고 뒤집고 탈곡하고. 그 지방의 병원에서 이 도시의 병원으로 아버지가 옮겨오실 때 따라나서려는 어머니께 아버진 크게 역정을 내셨지요. 논밭의 가을일을 내버려둘 참이냐고요. 봄 내내 씨뿌려서 여름 내내 한 가지 것에 여든여덟 번씩 손을 갖다 대고 인자 겨우 열매를 맺었는디 그것들 안 거두고 식구들 죄다 병원에만 있을 거냐구요. 결국 어머닌 눈물을 머금고 뒤처지셨습니다. 자식을 여섯이나 장성시켜놨지만 우리들 중 누구도 추수를 어떻게 하는지를 모릅니다. 설령 할 줄 안다고 해도 이 도시의 건물 안 책상에서 컴퓨터를 치고 전화를 받고 공문을 보내고 받으며 사느라 여러 날 계속해야 하는 추수 기간만큼 자리를 비울 수도 없습니다.
  칠년 만에 재발한 아버지의 병에 가장 놀란 분은 어머니인데 우리 부친이 쓰러지기 이틀 전에 술을 마셨다는 고모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들 어머닐 쳐다봤지요. 마치 부친의 병을 재발시킨 게 어머니나 된다는 듯이요. 설마 아버지의 병이 오로지 이틀 전에 마신 술 때문이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어디다 대고 원마할 데가 없는 우리들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괜한 화를 내는 거지요. 그래요. 어머니이기 때문에. 여섯 명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만 해도 여섯 마디. 그 원망 속엔 부친의 건강에 대한 염려만 실려 있는 건 아니지요. 이 도시의 일상 속에 샇여 있는 서류, 혹은 공적인 일로 만나야 할 사람들과의 일들이 중환자실에 며칠이고 누워 계시는 부친으로 인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한 석연찮음이 괜한 어머니에게 쏟아지는 거지요. 왜 술을 마시도록 내버려두세요? 술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나쁜지 뻔히 다 아시면서요. 최근에 집 짓는 일로 부친이 계속 어머니와 의견충돌을 일으켰다는 말을 들으면, 평소에 흔쾌히 집을 새로 짓겠다는 부친의 편을 들지도 않았으면서 또 여섯 명이 어머니께 대들지요. 어머니가 자꾸 아버지 심중을 건드리시니깐 화를 끊이셔서 쓰러지신 거예요.
  드디어 어머니께서,
  너희들은 지난 칠년을 아버지 병을 잊고 살았겄지마는 나는 니 아비가 숨소리만 이상하게 내도 가슴이 철렁헌 세월이었다아,
시며 눈물을 보이고 마실 때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때도 들었던 것 같네요. 모롱이를 돌아선 기차가 철거덕철거덕 마을을 가로질러가는 강철바퀴 소리를.

(중략)

  부친은  변하셨어요. 표정에 마음의 일을 전혀 내비치지 않던 분이 자주 우십니다. 당신이 눈물을 사람들이 보게 되면 얼른 고개를 돌리지요. 가장 많이 고갤 돌려야 하는 상대가 나랍니다. 다른 가족들이 직장 일에 아이들 돌보는 일에 바쁜 탓으로 아무래도 아버지 곁에 자주 있게 되는 사람은 단출한 나이기 때문이지요. 아버지가 울 적이면 나는 그저 들고 있던 물주전자를 내려놓거나, 괜히 소형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거나 그럽니다. 우는 사람 곁에 있기는 상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힘이 들지요. 더구나 우는 사람이 아버지이다 보니 여러날에 걸쳐 여러번 아버지의 눈물을 보건마는 그때마다 매번 당혹스럽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내가 허둥거리면 아버지는 이제는 주무시는 척하십니다. 얕게 콧소리조차 내시지요. 방금 울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겜 금세 잠이 들겠는가만 나는 아버지가 잠드셨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는 듯이 조심조심 하는 태가 역력하게 발소리를 죽이며 문을 가만히 여닫고서 병실 바깥으로 나오곤 합니다.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나는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지나간 과거에 쓰라림을 갖게 됩니다. 누가 실루엣으로 서 있는 저 과거를 저버릴 수 있겠어요. 결국 오늘도 내일의 과거일텐데. 그런데도 때로는 갑옷 같은 과거에 저항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옷만 벗어버리면 숨통잍 ㅡ일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누가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지금 병실에 누워 남몰래 울고 있는 아버지가 한때 마을에서 가장 미남인 청년이었다고, 팽나무 밑에서팔씨름을 하면 누구도 그 힘을 꺾을 수 없었던 청년이었다고요. 검은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위로 넘기고 부릉부릉 오토바이로 산길을 질주하시던 젊은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남동생의 종아리를 쪼아서 피를 내곤 하던 사나운 장닭을 눈 깜박할 새에 잡아올려 목을 비틀 때 아버지 팔뚝에 불끈 치솟던 힘줄도 기억합니다. 큰오빠에게 먹일 오리의 생피를 얻기 위해 희뿌연 새벽에 오리 정수리에 칼을 내리치던 모습도요. 원체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지만, 아아, 소리를 뽑아올리실 적의 아버지의 젊은날들을 기억하지요. 삼우러 삼짇날 연자 날아들고 호접은 편편 나무나무 속잎 나 가지꽃 피었다 춘몽을 떨쳐 먼산은 암암 근산은 중중 기암은 층층 매사니 울어 천리 시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주루루루루루루 저 골 물이 퀄퀄 열의 열 두 골 물이 한테로 합수쳐 천방져 지방져 월턱져 구부져 방울이 버큼져 건넌 병풍석에다 아주 쾅쾅 마주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어디메로 가잔 말 아마두 네로구나 요런 경치가 또 있나ㅡ 아버지의 탄력있는 젊은 목에서 뿜어올려지던 그 소리들. 부친이 당신의 영혼 속에 스며들어 있는 소리를 누르고 이 누추한 삶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건 쑥쑥 발목이 굵어지고 있는 우리 형제들 때문이었을테지요. 그렇게 좋아하던 낡은 가죽북을 선반에 올려놓았던건 자식들 앞에선 오로지 현재와 미래에 충실할 수밖에 없어서였겠지요. 그럴 적마저도 탄탄했던 부친의 어깨였는데, 문득 지난 생애의 자취를 한몫에 싹, 문질러버리고 울고 계시는 겁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느냐? 하시면서요.

  과연 목이 쑥 파인 환자복을 입고 초점이 흐린 눈빛으로 겁에 질린 아이처럼 병상에 피로한 몸을 파묻고 있는 저 사람과, 그 옛날 검정 가죽잠바 속에 탄탄한 육체를 숨겨가지고 다니며, 광풍을 못 이기어 너울너울 춤을 춘다네...... 소리를 내지르던 그 사람이 무슨 연결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아아, 저절로 눈이 감깁니다. 부친의 육체가 지니고 있는 가난했던 과거, 병이 침투한 현재, 이젠 당신 혼자서 흙으로 돌아가야 할 미래라니요.


(중략)

p 12-17


  윤희언니.
  나는 아무래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근친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석회질말고 다른병으로 자주 병원을 드나드셔도 나는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뜰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어요. 그냥 아프시다,고만 생각했죠. 얼마간 병원에 있다가 퇴원할 거야,라고요. 심지어는 칠년 전, 그 한 해에 아버지는 네 번이나 의식을 잃었죠. 그때도 난 아버지가 돌아가시리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한번 의식을 잃으면 사흘 만에, 나흘 만에 깨어나셨고, 한번은 보름이 지나도록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의사에게서 임종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냥 농담 같았죠. 늘 아버지께 불효했다고 생각하는 화 잘 내는 오빠가 중환자실 문 밖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여러날 이어졌어도 나는 염려하지 않았어요. 부친의 의식 없난 날이 길어지자 오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주엉ㄹ거렸죠. 아버지, 살아만 주세요. 이젠 잘할게요. 살아만 주세요. 살아만 주세요.

  그래요, 오빤 그렇게 말했어요. 아버지, 살아만 주세요. 라고.

  그때 나는 아버지 때문에 우는 성인 남자를 보았지요. 행여 그대로 돌아가실까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덩치 큰 남자를요. 그때 그랬어요. 이 세상의 많은 남자들 중에 저 사람이 내 오빠라는 것이 믿음직스러웠어요. 비록 울고 있는 연약한 모습이긴 해도 그를 이해하려고 이쓰게 된 건 그때부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본래 활달한 사람이었어요. 마을 여자아이들이 공터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면 면도칼로 고무줄을 끊고 달아났고, 밤이면 마을 사내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는데 꼭 밀밭이나 보리밭으로 숨어 뒹굴어서는 다 자란 밀이나 보리들을 쓰러뜨려놓곤 했죠. 뿐인가요. 여름밤이면 마을 여자들이 또랑에서 목욕을 하곤 했는데 ,어느날 오빤 사내아이들 몇과 함께 또랑가에 서 있는 고목 팽나무에 미리 올라가 있었어요. 어두어져 목욕 나온 여자들의 벌거벗은 몸을 나무 위에서 훔쳐보자는 심보였죠. 여름밤엔 남자들은 그 또랑가를 지나다니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는데 오빠가 주동이 되어 그걸 깨뜨린 거예요. 나도 그날 엄마랑 또랑물 속에서 첨벙거리고 있었는데 나무 위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처음엔 팽나무잎이 밤바람이 스치는 소린가 했지요. 훔쳐보는 자들은 숨을 죽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들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나봐요. 결국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너무 웃느라 오빤 또랑에 첨벙, 빠졌답니다. 그때 삔 팔이 지금도 비틀어져 있어요. 그런 소년이 덩치 큰 남자가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실까봐 눈물을 뚝뚝떨어뜨리며 울다니


(중략)

  칠년 전이면 오빠가 지금의 제 나이였네요.
  어쩌면 그때 그도 지금의 나처럼 처음으로 근친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해서 그렇게 울었던 것일까요? 삶이 가져다주는 것 중엔 우리가 물리쳐볼 수 없는 절대의 상실이 있다는 것을 그도 그때 처음으로 인지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버질 보면 나모 모르게 속으로 눈물이 고이는 까닭도 그것일까요? 혹시오빤 그때 중환자실의 아버질 두고서 옛날의 아버지, 그의 종아리에 그토록 모진 회최질을 하던 부친의 건강한 팔뚝을 그리워한 건 아니었을는지요. 생각해보면 부친과 늘 함께 살았던 것도 아닙니다. 십수년 전에 이 도시로 떠나온 후론 아버진 시골에 우린 이 도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슨 상징처럼요, 언제나 그곳에 계시는 분이었지 이 세상에 안 계시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게 나쁜 일이 생길 적마다 마음ㅇ속으로부터 저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별 잘못도 없는 그 사람을 그렇게 저버려서 내가 이런 시련 앞에 섰구나, 생각하죠. 도저히 납득이 잘 되지 않는 일들 앞에선 특히 그래0요. 내가 그때 그 사람을 저버렸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구나, 생각하면 그때서야 그 납득되지 않는 일이 받아들여지지요. 비겁한 화해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의 증인들을 저 공기 속으로 보내야 하는 일은 내가 저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로는 모자라는지 화해가 되질 않네요. 아마도 그래서겠지요. 내가 이렇게 언니에게 필사적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까닭은 겨우 서른다섯에 남편을 저 공기 속으로 보내야 했던 언니여서겠지요. 땅에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는데 언닌 그 절대의 상실 앞에선 무얼 딛고 일어섰는지요?

p30-35



모여 있는 불빛

 넝뫼양반은 아버지이ㅡ불러대는 딸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려놓아버린다. 그러고는 반사적으로 벽의 사진틀을 바라본다. 거기 학사모를 쓴 딸이 생긋이 웃고 있다. 허허, 이쁜놈. 딸은 영락없이 넝뫼댁을 닮았다. 동그란 눈. 도톰한 입술. 새가 날아오르는 것같이 보이는 휘어진 눈썹. 딸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넝뫼양반은 지난 열흘 동안 끓였던 속을 처음으로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사진으로라도 딸을 바라보고 있으면 넝뫼양반은 자신이 스무살이 된 것 같아진다. 그때, 열일곱 된 넝뫼댁을 넝뫼로 선보러 가던 일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넝뫼의 넝은 그 산 이름이었을까? 오직 산 그늘이 첩첩한 속에 있던 그 초가집. 마루 지나 방문을 열었을 때 그 방안까지 산그늘이 따라와 방안은 어두웠다. 그 어두운 방에서 선이라고 보는데 처녀는 한사코 얼굴을 들지 않는 것이다. 코가 비뚤어졌나, 눈 속에 점이 있나, 처녀는 오로지 저고리의 동정 끝만 내려다보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잠깐, 먼길 오셨으니 점심밥이나 들고 가시라고 밥 짓겠다고 일어서버리는 것이다. 환한 데서 얼굴을 한번 봐야 슬 것인디...... 처녀가 앉았다 나간 자리를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넝뫼양반은 변소나 가는 듯이 일어서 나왔다. 그리고는 뒤뜰이 내다보이는 대숲에 숨어들었다. 대숲은 뒤뜰의 배추밭과 장독대로 이어져서 밥상을 차리자면 처녀가 한번은 양념이라도 뜨러 나올 것이다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처녀는 양념을 뜨러 나오는 게 아니라 작은 광주리를 들고 배추를 뽑으러 나왔다. 겉절이를 할 양이었던가보았다. 처녀가 배추밭에 서서 이 고랑 저 고랑을 눈여겨보더니 어느 고랑으로 가서 펑퍼짐하게 앉아 뽑을 배추를 고르는데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던 넝뫼양반은 흐뭇한 속웃음을 치고 말았다. 처녀가 이 배추 저 배추를 다제처고선 잎이 제일 푸릇푸릇한 잘생긴 배루초만 골라 뽑고 있었던 것이다. 넝뫼양반이 먹을 점심상에 오를 겉절이 배추를 잘생긴 놈으로 골로 뽑고 있는 처녀의 그 모습. 대숲에 숨어서 잘생긴 배추를 골라 뽑는 처녀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넝뫼양반은 저 모습이면 됏다, 생각했다. 푸른 배추마냥 파아란 저 모습이면 되었다고. 딸애의 젊은 얼굴에는 몇십년 전 그 처녀의 어여쁨이 서려있다. 세월이 넝뫼댁에게서 훑어가버린 뽀송뽀송함...... 그 애틋함...... 넝뫼양반의 것이라면 그림자도 차마 못 밟아 저 만큼 떨어져 걸어오던 처녓적 넝뫼댁의 순정까지도. 그런데 넝뫼양반은 알 수 없다. 작년엔가 선을 봬주었던 그 총각이 왜 딸애보고 광대뼈가 솟아서 고집쟁이겠군요, 했는지를. 광대뼈라니? 뭔 광대뼈? 넝뫼양반은 여지껏 딸애의 얼굴에서 광대뼈 같은 건 요만큼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마중 나가자 마음을 고쳐 먹고 넝뫼양반이 헛간에서 오토바이를 끌어내는데 누가 자꾸만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돌아다보니 초승달이 조그맣게 떠 있다. 둥그렇게 구부러진 게 꼭 넝뫼댁의 이마 같다.
  "망할놈의 여편네......사람 참말 귀찮게 허네."
  하늘에 뜬 총총한 잔별들이 얼레꼴라리, 넝뫼양반이 오토바이 끌고 넝뫼대 마중 나가네 얼레꼴라리, 놀려대며 몰려다니는 것 같아 넝뫼양반은 그중 이윽히 내려다보고 있는 초승달을 올려다보며 괜히 투덜거린다. 정말 귀찮지만 나는 정말 마중 같은 거 나가지 않고 잠이나 자고 싶지만, 밤길이니 어쩔 수 없잖소 달님. 그러니 눈감아주오.
  성당 철문 옆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서 나오는 사람들을 눈여겨 살펴보아도 넝뫼댁은 나오지 않는다. 행여 놓칠세라, 눈을 크게 떠봐도 안 보인다. 이놈의 여편네가 부지런 떨고 가번졌나? 밤미사 보던 사람들이 썰물 지듯이 다 빠져나갔는데도 넝뫼댁의 자취는 보이지 않는다. 가버렸고만. 그냥 돌아서려다가 넝뫼양반은 혹시 몰라서 성당 안으로 들어가본다. 성당 뜰 하얀 성모상 앞, 거기에 넝뫼댁이 참으로 간절하게 손을 모으고 있다. 반갑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넝뫼댁 손을 잡아끌려다가 넝뫼양반은 뒤로 물러선다. 옆에 누가 온지도 모를 정도로 넝뫼댁이 기도에 깊이 빠져 있어서.
  읍내에서 십리 들어가는 넝뫼양반의 마을에서는 한밤중인 시간이 읍내 사람들에겐 아직 초저녁이다. 넝뫼댁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읍내를 빠져나오는데 어느 골목이나 왁자하다. 달도 별도 안 보인다. 늘 넝뫼양반만 보면 안녕하세요, 나긋이 인사를 하는 포목점 여자도 여자손님 두엇에게 천을 펴 보이고 있다. 오토바이를 처음 타보는 넝뫼댁은 읍내의 밝은 불빛 아래서는 흔들려도 버티더니, 오토바이가 한적한 산길로 들어서자 넝뫼양반의 허리를 꽉 잡는다.
  "기도허믄 밥이 생겨? 성모님이 걸어나와 논물대줘? 엥간히 허구 나오지나, 그냥 넘덜은 다나오는디 무섭지도 안해? 그 캄캄한 디서 그러고 앉았어? 지다리다가 다리 뿌러지게?"
  "당신이 마중 나올 종을 지가 알았어야제요. 성당 간다고 헐 띠는 대답도 않더니만 웬일이요이? 마중 나온게 좋긴 허네요. 첨으로 오토바이도 타보고 이르케 하늘의 별도 보고요. 바람도 참말 시원타아."
  "뭐라 기도혔디야?"
  "기도는 쪼끔밖에 못했어라오. 대신에 신부님 존 말씀 많이 들었구마는. 아이, 나보다도 당신이 들어뒀음 더 좋을긴디ㅏ. 내가 옮겨볼게 들어볼라요? 나를 죽이고 살라 합디다. 나보다 못한 사람덜얼 생각허고 살믄 성도 안 난다요. 글고 모든 일은 하느님이 다 뜻이 있어서 만든 일이라드만요. 세상 사는 뜻을 깨닫게 허려구 나쁜 일도 당허게 허구 그런다요. 근디 말이유, 지야 신부님 이야그 가만 들음서 느낀 것인디요. 너무 존 말만 헝게 젊은사람덜이 신부님 말씸대로 살었다간 빙신 되는 거 아닌가 싶기는 헙디다이. 언지나 나를 낮추고 살라 허싲는디 요새 고르케 살믄 덕 있다고 생각허는 게 아니라 얕보잖는감요? 그치만도 당신과 나한티는 그게 존 말이요. 송아지 앓은 거 생각허믄 속이 딸그락딸그락 아프지만도 다 지난 일이니 어쩌겄어요. 이제 그만 잊어뻐리소. 맴속에 두고두고 있음 속병만 들지 안 근가요? 나한티 성질내는 거야 암 시랑도 않으요. 당신이 그러다 병 될까봐 그러요. 글구, 내가 기도했지. 담에 소새끼 또 날 때는 아주 튼튼한 수소가 우리 집으로 오게 해달라구 했그만. 두고 보소. 꼭 그럴것이어라. 당신이 농사일 소 키우는 일밖에 몰라 글지 시상에 나와서 사람덜 얘기 들어보믄 우리 송아지 그리 된 거 그거는 암 일도 아니어라오. 사람덜 이야그 들어보믄 우리덜은 참만 호강에 되받혀 살고 있더랑게요. 우리야 뭔 수심이 있소. 딸내미 하나 있는 거 시집만 보내믄......아, 참, 서울서 전화 안 왔습디여?"
  "왔어."
  "그래, 송아지 죽은 거 이야그혔소?"
  "뭐할라? 깝갑헌 사람덜이나 깝깝허고 말제."
  "그리요, 잘했소잉. 근디 뭣 땜시 그새 전화 한 통 못했답디여?"
  "뭔 일이, 바뻤다누만."
  "체에, 그깟 전화허는디 뭐 한 시간이 걸린대여, 두 시간이 걸린대여? 다아 맴이 문제지. 아까 낮에 나한티 하던 것맹이로 욕 좀 해주지 그맀소?"
  넝뫼양반은 밤길의 바람 속에서 허어, 웃고 만다. 어느 산밭의 애오이의 풋냄새가 웃는 입속으로 싸악 스며든다. 통화할 때 자신의 딸애한테 한 소리를 넝뫼댁이 꼭같이 하고 있는 흐뭇함이 넝뫼양반으로 하여금 오토바이의 속도를 더 내게 한다. 넝뫼댁은 왜 이라요, 겁을 내며 넝뫼양반의 허리춤을 더 꽉 잡는다.


p87-91


오래전 집을 떠날 떄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남자애를 기다리다가 여자애는 먼저 잠이 들었다. 남자애는 다시 휘익, 유리문을 통해 들어왔다. 남자애는 비를 ㅎ므씬 다 맞았는지 촉촉히 젖어 있었다. 잠들었구나. 남자애는 남포등을 곁에 세워두고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잠든 여자애의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준다. 너무 오래 자진 말아라. 곧 가야 하니까. 가......지......말......아. 여자애가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리자 남자애가 여자애의 손을 쥐어주며 자고 있는 여자애를 안심시킨다. 너는 아직도 내가 너를 두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엾어라. 이젠 안심하렴.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있어야 하는걸. 처음엔 내가 모르는 어디 깊은 물속으로 네가 잠겨버렸으면 할 때도 있었어. 그러나 정말 네가 잠겨버린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져서 얼른 네 손을 꼭 틀어쥐곤 했지. 떠난다면 네가 떠날 거야. 남자애는 잠든 여자애를 깊이 껴안는다. 그럴 거다. 떠난다면 네가 떠날 거다. 나는 이미 너와 헤어질 힘을 잃었어.

p157

갈대배를 타고 섬의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밤의 객실의 침대에 누운 채로 호수의 수면 위로 노랗게 떠오르는 달을 지켜보았습니다. 지상의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하는 물 위에 아름다운 노란 달이 잠겨 있었습니다. 이따금 맑은 밤구름이 달의 이마를 짚고 흘러갔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그러다가 왜 깨어났는지를. 놓친 달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렸을까, 아니네요. 나를 건너 다른 달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당신의 존재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렸던 것 같네요. 당신이 떠나면 모든 게 멈출 거리고 생각했습니다. 내겐 당신이 나의 산정이라고. 당신이 죽을 때 보게 될 사람이 나이기를, 내가 죽을 때 잡을 손이 당신 손이기를 바랐습니다. 한번 떠나갔다가 돌아온 당신이 또 간다 하니 제 마음인들 제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내가 당신의 이마에 내던진 그 찻집의 꽃병은 부디 잊어주세요. 저는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은 게 아니라 당신의 백조 한마리를 낳고 그 어린것에게 존재하는 것들의 처음을 일러주며 조용한 생활을 일궈내고 싶었습니다. 그뿐입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을 때, 달은 가고, 아아, 어렴풋한 새벽빛 속으로 금빛 샛별이 우주 속에서 찬란히 솟아 올라 호수 속으로 휘익, 빠졌습니다.나를 지나간 당신......어디서라도 저 별빛이 당신을 지켜주기를. 내 영혼이 지상의 가장 높은 곳ㅅ에서 일렁이고 있는 푸른 물 속으로 휘익, 빠지는 순간,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당신을 잃고, 이토록 먼 곳에서 당신을 상념할 때까지의 애증도 한순간에 조용해졌으니. 우리가 발생시켰던 외로운 에너지만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스며들어가 몇천년을 가엾이 떠돌겠지요. 마음이 너무나 조용해져버렸으므로 침대에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고갤 돌릴 힘조차 남아 있질 않아서 새벽녘의 호수에 조용한 바람이 일렁이는 것을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새벽빛을 타고 키가 큰 인디오가 한 척의 갈대배를 저어 소리없이 호수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요. 송어를 잡으러 가는 것일까. 갈대배는 수백년전부터 저 새벽빛을 타고 호수 안으로 들어갔겠지요. 자신도 모르게 너무 깊이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못한 배도 있었겠고요. 한 척의 갈대배가 여명 속으로 멀어질 무렵, 푸른 물의 끝에서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그때야 저는 기운을 차려 당신의 안녕하고조차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눈을 질끅ㄴ 감았네요. 아니 뜨고 있을 수조차도 없었어요. 해가 푸른 물을 찰나에 붉게 물들이며 공격적으로 떠올랐거든요. 잉카를 정복하러 온 스페인 병사들처럼. 그 붉은 해를 눈을 부릅뜨고 맞바라봤더라면 저는 그 빛에 눈이 찔려 눈이 멀었을 겁니다. 무엇에라도 다시 눈이 멀면 나의 빈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나의 빈집에는 내가빨아 널어놓고 온 빨래가 있습니다. 다급히 나오느라 걷어 개놓지 못하고 길을 나섰어요. 돌아가서 그 빨래를 걷어야지요.

p 168-170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전문


  나는 이따금 다른 사람들은 삶 속에서 돌연히 발생하는 부재나 돌연한 사별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하다. 여동생이 결혼을 해서 내 곁을 떠나간 것과 동시에 이따금 만나서 함께 밥을 먹고 강변으로 가서 강물을 쳐다보곤 했던 수화기 저편의 그의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져가는 걸 감당하는 일이 내겐 매번 힘겹다. 때로는 이제 내겐 가까웠던 사람과 작별할 힘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도 이렇게 또 살아지는 걸 보면 삶이 무섭기조차 하다. 한 사람이 멀어져갈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을 찾아 헤매는 대신 무엇인가를 반복적으로 했다. 똑같은 행동의 반복은 아니었다.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행동의 반복이었다. 어떤 이별 앞에선 밤마다 외출을 해서 시내에서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고, 어떤 이별 앞에선 오후마다 수영장에서 헤엄을 쳤으며, 어떤 이별 앞에선 틈만 나면 기차를 타고 낯선 역에 도착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러는 사이 고독은 단련되었다. 무슨 행동인가를 그렇게 반복적으로 계속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내게서 멀어졌다고 해서 이 세상에 없는 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곤 했다. 어디서든 사랑 있으면 된다고. 그러나 매번 거기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의 힘겨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만약 내게 가까운 사람들의 돌연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면 내가 자연스레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란 더 힘겨웠을 것이다. 나는 나하고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보다 그들이 죽는게 두렵다. 멀어져서 못 만나는 것하고 죽어서 못 만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도 나처럼 걸어다니고 감기에 걸리고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엘 간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가 달라진 건 업성, 내가 내게 속삭였다. 이젠 나와 함께가 아니고 다른 사람과 함께인 것 뿐이야, 라고.
  그가 부재하면 그가 남긴 사물들일 숨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가 더 이상 내 집 앞에 자동차를 세우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내 생일 날 선물로 준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가 내 곁에 있을 땐 한번도 걸지 않았던 목걸이였다. 그때는 그가 있었으므로 대체물이 없어도 그를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쌕쌕 숨소리를 내는 목걸이를 목에 걸고 책상 앞에 앉아 더이상 할말이 없어질 때까지 그에게 편지를 썼다. 어느날은 두 통도 쓰고 어느날은 세 통도 썼다. 편지는 물론 부치지 않았다. 물론이라고 써보니 이상하다. 쓴 편지를 안 부치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나한테 있어서는 처음부터 부치려고 썼던 편지는 아니었다. 냉랭해진 그의 목소리가 던져주는 슬픔을 견딜 방법이 달리 없어서 썼던 것일 뿌니. 편지가 다 써지면 접어서 큼직한 노란봉투에 담아놓았다.
p211-212



  문을 따고 들어와 타월로 머리를 싸매고서 시간을 들여 샤워를 했다. 고정적인 일자리를 찾아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같고, 기교에 넘치던 첼로 앞의 요요마 생각을 했던 것도 같고, 서른이란 내 나이를 생각했던 것도 같다. 서른. 나는 청춘도 없이 이십대를 지나왔다. 하나의 사건도 없이, 문장이 될 만한 한마디의 말도 없이. 나의 이십대는 침묵과 도보뿐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냥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혹, 아직도 명동성당의 벤치나 남쪽 절집으로 들어가는 전나무 그림자가 어룽대는 긴 산문에 나의 등자국이나 발자국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대체 무엇하고 그렇게 지독한 이별을 했기에 그렇게 일찍 삶에 대해 겁을 내게 되었는지. 지금이나 예나 다름없이 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이반딧불 같은것은 누구하고도 헤어지기 싫다는 것이다. 헤어지기 싫어 만나지조차 못했다면? 그랬다면? 병신 같은 이십대였다고 생각될 때면 눈이 부릅떠진다. 어느 거리에나 고갤 숙이고 다리를 절며 걷고 잇는 내가 보인다. 그 속을 걸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걷다가 몇몇을 잃고 몇몇을 얻고 그리고 지금은 다시 그를 잃어가고 있는 중인가. 내게서 멀어져가는 그를 생각하는 사이 내 마음에 떠올랐던 마당은 다시 방죽 속으로 가라앉았다.

p21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