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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text

김연수 : 청춘의 문장들


1970년, 김천 출생의 작가인 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좀 더 이 작가의 책을 유심히 읽었을 것 같다. 이 사람이 보냈던 기억 속의 시절에 나오는 학교라든지 거리라든지 하는 것들을 좀 더 자세히 봤을 텐데.

  스무 살이 지나면은 스물 하나가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의 시간이 온다고 했던, 스무 살, 의 작가 김연수.

반지루에 가 있다가 고구마 라떼를 빨대로 휘휘 저어대며 낭창하게 앉아 있다가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으로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실 어려워서 끝까지 못 읽긴 했는데,)

인트로를 보다가 어쩐지 가슴이 꽉 하고 조이는 것 같아가지고 그냥 못넘어갔다 당신은 지금 마흔 즈음을 살고 있을 텐데. 그냥 스무살 언저리에 살고 있는 나 를 넘겨짚어 보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구 해서,

 

 

 

- 한 편의 시와 몇 줄의 문장으로 쓴 서문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데미안]과 [파우스트]와 [설국]을 읽었고 절에서 밤새 1,080배를 했으며 매일 해질 무렵이면 열 바퀴씩 운동장을 돌았고 매 순간 의미 있게 살지 않는다면 그 즉시 자살한다는 내용의 '조건부자살동의서'라는 것을 작성해 책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시를 쓰는 여학생을 맹목적으로 좋아했고 초콜릿 맛이 나는 '장미'를 피웠으며 새벽 2시 비둘기호를 타고 부산으로 도망치는 친구를 배웅하느라 '나폴레옹'을 마셨고 가출에서 돌아온 또 다른 친구가 들려준, 너무나 예쁘다는 강릉역 앞 창녀촌의 여자를 혼자 상상했다.

  하지만 무엇에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런 밤이면 고향집 2층 지붕 위에 올라가 누워 있곤 했다. 처음에는 내가 아래에 있고 별들이 위에 있지만, 이윽고 시간이 흐로고 나면 그 위치가 바뀌어 내가 위에 있고 별들이 아래에 있게 된다. 그리고 나서 서서히 그 별들의 바다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별들만이 가득한 바다. 또 나는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지, 그게 너무나 궁금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두 개의 글을 읽었다. 하나는 이백의 시 [경정산에 올라]이고 하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딸 쓰시마 유코가 쓴 짧은 소설 [꿈의 노래]다.

 

 

 

여러 새들 높이 날아 가뭇해지고

쓸쓸하던 구름 하나 한가롭게 떠 가니

마주 보아도 서로가 싫지 않은 건

이제는 경정산만 남아 있구나

 

 

 

아이들을 잃고 서럽게 울다 눈이 먼 어머니의 노래,

그리운 안주야, 호 ㅡ 야레호ㅡ, 그리운 즈시오

호 ㅡ 야레호ㅡ, 그리워를 영어로 말하면, 아이 미스유, 라지.

내 존재에서 당신이 빠져 있다. 그래서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라지. 안나, 호 ㅡ 레, 호 ㅡ 레의 여동생 신도, 너도, 모두 그럴테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