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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text

[습작] 좋은사람

홍에게 전화를 했다. 오랫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반갑다.
비가 오는 일요일 이었고, 라면값이 올랐다고 한다.
홍은 오른 라면값 때문에 이십원이 모자라 비를 맞아가며
짜파게티를 사러 두번이나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홍에게 이렇게 좋은 날 연인과의 데이트도 없이
짜파게티를 끓이고 있다고 핀잔을 주었고, 홍은 비가 오는 날이
무어가 좋은날이냐며 말을 받았다.
한참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홍이 말한다. 

"안되겠어"
"뭐가?"
"나 남자 하나만 소개시켜줘." 

 홍의 말은 라면값이 올랐다는 소리보다 정말
더 뜬금없이 느껴졌다. 그러다 조금 생각해보니 다른 녀석이면
몰라도 홍이라면 괜찮은 사람으로 하나 소개시켜 줄만도
하다 싶어 자세히 물었다. 

"그래? 어때야 되는데? 직장인? 얼굴은 잘생겨야 하나?" 

"아니! 절대, 직장인은 싫어. 얼굴은 중요하지 않고, 키가 크고
스타일이 좋았으면 좋겠어." 

홍, 너의 나이는 스물 셋이라고, 너의 남자친구 상대라면
직장인이 어울릴 것 같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이렇게 말했다간 홍이 삐질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있자 하니 뒤이어 나오는 홍의 말이 걸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이 있었으면 좋겠어! 사실 니가 별거 없잖아? 근데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가 꿈이 있어서잖니.
그러니까 꿈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는 홍에게 나는 '그런 나같은 사람으로 하나 찾아서
소개시켜줄께!' 했다. 덕분에 나는 홍에게
'너처럼 줄담배를 피워대고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싫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하는 잔소리와 어떠한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부연설명을 한참동안 들은 후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홍과의 전화를 끊자 기억들이 밀려온다.
비처럼 내리는 그 기억 속에 지난 시절 내가 있고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람들이다. 한 때는 그들의 모든 화살표가
나의 화살표와 맞닿아 있었고 세상의 중심이 서로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서로의 화살표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서로가 속한 세상에서 상대방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이내는
지워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나는 홍의 말처럼 결코 좋은 사람은
못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자 갑자기 씁쓸해진다.
그래서 담배 하나를 찾아 물었다. 그러다 꿈이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홍의 말이 떠올라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온다.  

 홍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나, 십대에 걸쳐서 이십대를 거쳐
지금 스물넷까지 홀러오는 동안, 나는 한번도 나에게 꿈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거나, 기타를 치고 싶거나,
광고기획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싶다거하는 하는 "꿈"들이 항상
내 가슴 한구석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꿈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의 말과는
반대로 전혀 좋은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고는 싶다. 어쩌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내가 좋은 사람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꿈이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홍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조금
더 찾아봐야 겠다.
그리고 내가 좋은 사람이란걸 알아줄만한 사람을 조금 더
찾아봐야 겠다. 

어쩌면 그때까지 기억속에서
비는 계속 내리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홍익대학교 광고홍보학부 05학번 강수식
2008-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