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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주변사람

A군 일기 발췌

2008.12.01 00:47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들끼리만 저만치 등 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 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살 이후가 온다. 
 
_ T양이 하도 스무살 스무살 해대니
나도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좀 받는다.
도서관에서 빌린 김연수의 <스무 살>에 나오는 구절.
이제 12월이다. 1개월 남았다.
나는 19살과 20살의 어정쩡한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한 해를 보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찝찝한 기분이다.
다 같은 스무살이라도
freshman으로 보낸 1년, 재수생으로 보낸 1년, 
조기졸업자면 sophomore 로 보낸 1년이 제각기 다를텐데 싶지만
20세가 하나의 경계점에 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요새는 몸에 힘이 없어서 자꾸 푹 퍼지는데
이러한 무기력이 삶이 무가치하다는 저변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느낌이 언뜻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는데 말이다 ㅠ
보람차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용기를 주세요 _



 

2008.12.22 01:58


I can only imagine 관순홈피

아프다는 것을 부끄러워 말아야지  
(그럼 이때까지 했던 투정들은 뭐였을까 .. -_- ) 

자꾸 세월이니 나이니 이런 말을 꺼내서 머쓱하기도 하지만,
늙어가는 것의 좋은 점은 ㅡ
나는 하나의 비빔밥 그릇이고
흘러가는 시간이 밥이고 양념이고 야채며 계란 후라이가 되어서
이제까지 그릇에 쌓아놓은 것이 꽤 그득하니
오늘 하루 매운 고추며 마늘을 좀 썰어넣었다고
눈물 날 만큼 맵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 난 쓱쓱 비벼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ㅁ;  

이제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눈 3cm 밑이 멀거면서도 축축하고 뜨시웁다.
새로 받은 해부학 책을 뒤져봤는데
눈물샘이 어디있는진 잘 모르겠다 음음 
저 멀리 눈 덮인 히말라야 산을 보면,
꾸정물이 흐르는 갠지스 강을 보면 펑펑 울 수 있을까 _  

왜 가슴이 허전하냐 하면,
오늘 그리운 사람들을 꽤 만났는데,
그립지 않았는데 사실은 그리워했고
그리워했던 내가 그립고
그립지 않은 내가 그립고
더이상 그립지 않다는 것이 그립고
그냥 그리워서 ..  

 

오래 전에 재밌게 읽었던 판타지 소설의 소제목이 생각난다.
<우리 언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나아가게 하소서. 
돌이켜보니 (오늘을 포함해서 )
일기의 마지막은 대부분 뭘 바라는 내용이다..
욕심 많은 나 ㅜㅜ




2008.08.31 23:12

 
생활이 내는 빛깔이 먹먹하다.
그것이 현실의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 서글프고. 

내일은 개강일이다.
2학기 동안 또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게 되겠지.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이 힘이 든다기 보다는
그 속에서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괴로울 테다.
나는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런가.
오래된 친구, 내 안의 빛을 밝혀주는 친구들이 그리운 것은
나의 또다른 못남인지도 모른다.  

2학기에는 어떤 삶을 살고픈가 슬며시 자문하지만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고픈가 라는 질문에 귀결된 뿐이다.
평온, 이란 단어를 생각하지만
그것 역시 파도가 밀려오고 난 뒤의 잠시,가 아닌가 회의가 든다.
성은의 미니홈피엔  
젊음이란 / 이룰 수 없는 일에 도전을 하고/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하고/ 저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란 세르반테스의 글귀를 적어놨는데
이 호쾌한 내지름은 마음에 든다. 

그래, 바다를 꿈꾸며 살리라.
밀려왔다 쓸려나가고
더 없이 풍밀하고
그 파란 빛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적시고
잠시의 입맞춤으로 충분한
바다.   

그리운 이들이여, 안녕을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