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비구름이 가득이다. 닳도록 들었던 예전 노래로 방 안을 가득 채워뒀다. 열어둔 창문으로 습기있는 찬 바람이 스며든다. 사과는 무릎에 누워 단장을 하고 있고 나는 먼 곳에 대한 생각을 한다.
02 고양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를 봤다. 베란다에 열어둔 창으로 들어오는 습한 바람을 마셨다. 킁킁 화분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두번째 목욕을 했다. 오돌오돌 떨길래 전기장판 온도를 최고 수치인 7로 틀어놓고 이불 속에 넣어서 물기를 닦아줬다. 물이 싫은 가보다. 할짝할짝 그릇에 담긴 물은 잘 만 마시는데.
03 새벽기도를 가려고 일어났는데 밖이 비구름으로 너무 깜깜하고 무서워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두시간 쯤 더 잤나, 갑자기 깼다. 갑자기 깼는데 갑작스레 늘 머리맡에 잠들어 있거나 발치에 누워있던 고양이가 안보인다. 방울 소리만 들어도 달려오던 사과가 안보여서 우림이 방을 뒤졌다가 유림이 방을 뒤졌다가 거실에 베란다까지 뒤졌는데 없다. 문이 열린 데라고는 다 뒤졌는데. 내 방에 있나, 싶어 뒤돌아 걷는데 미오, 절박한 울음소리다. 잘들어보니 문이 닫힌 앞베란다에서 소리가 난다. 문을 열었더니 고양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와 안겼다. 먼저 달려와 안긴 사과를 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무서웠나, 싶어서 꼭 안아들고 와서 이불을 덮어줬다. 몇 번이고 입술에 턱에 그루밍을 하더니 잔다. 나도 잤다. 고양이라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다.
04 삼일 후면 이 곳에 내가 없다. 사십일 동안 머물 나라에 대한 공부가 없어 교보에 가려고 한다. 어떤 책을 사오면 좋을까, 생각해 봤는데 기형도 시인의 책이 사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서점에 가서도 이 생각이 계속이면 사 와야지. 무릎에 뉘인 고양이를 두고 갈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잘 다녀올게 나. 곧 다시 만나요
'일기 > 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물네번째 생일날 (0) | 2012.04.12 |
---|---|
잠옷을 입으렴 (0) | 2012.04.03 |
오늘의 (0) | 2012.03.08 |
내 생각은 그래 (0) | 2011.10.03 |
세상에 생이 쉬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 (0) | 2011.09.13 |
목요일 오전 (0) | 2011.06.16 |
오늘 오전이면 4학년 1학기가 몽땅 끝난다 (0) | 2011.06.14 |
60분 채 안되는 시험치러가기 5분전에 안쓰려니 맘이 그래서 한시간을 못참고 (0) | 2011.06.07 |
성인용 직업적성검사 결과 (0) | 2011.06.03 |
문득 (0) | 2011.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