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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끔사진

@summer


   #1                                                                             #2

  



여름이 무르익어간다. 눈에 드는 햇볕이 강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니는 일이 잦다.

전보다 더 많이 걷고, 자주 계단을 오르 내리는 일상.


그제는 화방에 들러 먹물과 붓한자루와 화선지 묶음을 좀 사왔다. 만원 조금 넘게 들었다.

색이 고운 것들이 많아 사고싶었지만 집에 있는 수채물감을 먼저 써 보기로 했고, 물감이나 먹을 갤 조그만 종지는 목요일에 황학동시장에서 사기로 하고,. 당분간은 잉크를 담아 쓰려고 두었던 크림 통을 써야지, 하며 돈을 아꼈다. 엄마아빠가 여행에 다녀오시면 본가에 가 서랍한켠에 넣어 둔 벼루며 연적이며가 가지런히 담겨있을 정갈한 나무 상자를 챙겨와야겠다.


먹을 가는 냄새를, 종종 지하철이나 길가에서 맡는 날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대게 여름날에 그랬다. 그리고 스무살이 넘어서 그랬고.


돌아보면 열 살때, 처음 서예를 배웠다. 손톱 밑이 까맣지 않은 날이 없었던 때였고 붓을 잡는 손모양이 재미있어서 매일 수업에 갔다. 붓을 빨러 수돗가에 가서 까만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붓을 깨끗하게 빨아와서는, 서예 반 붓걸이에 가지런히 걸어두고 교실문을 닫고 나가는게 좋았다. 중학생이 되서도 가아끔, 먹을 쓸 날이 있었지만 전처럼 정성스럽게 글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벼루에 물을 조금 붓고 먹을 갈고 하는 그 동작들 생각이 날 적도 있었지만 대게는 상상으로 그쳤었다. 

먹을 다르게 쓰는 사람도 있다는 건, 관철이를 보고서였다. 고교시절, 늦은 밤 - 정성스레 먹을 갈아 이 시를 적어 옮겼다는 말과 전해받은 시화를 방문에 오랫동안 붙여뒀었다. 모나지 않은 둥근 네 글씨가 좋았던 것 같다.


준세가 했던 말들 중, 오랫동안 서예를 배웠다는 말들이나 주말이 무료하다는 말이나, 하는 말들이 어쩐지 먹먹해서 서예교실을 찾아보겠다고 말한 후 한두달 뒤 쯤, 집 근처 작은 서예교실을 찾았다. 많아봐야 중학교 일학년쯤 되었을 것 같은 남자 아이가 궁체를 연습하고 있었다. 원장님은 글자를 잘 쓰려면 먼저 한자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주말에는 인사동에 교실이 오픈되니 거기서 써도 된다고. 책자며 명함이며 받아와서는 아직 등록하지 않았다. 이번 주 목요일 저녁이 지나 미묘와 뜸(혹은 결)과 조금 글자를 써본 후 등록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겠다 싶은 생각이 간만에 든다.


요즘은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간다.

코바늘과 자수, 뱃지 만들기와 글자쓰기, 지점토나 공업용 재료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장식품 같은 것들,. 

(그러고보니 화방에서 지점토도 한덩어이 사왔다)

목요일 오전에 의숙언니와 동대문을 들러 실타래 몇묶음과 바늘들을 사고, 점심이후 황학동에 들러 종지장을 사서 저녁에는 쓸모 멤버들과 작게작게 글을 좀 써보고 ,.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상과 약속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여름.